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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

by 날랜두꺼비 2024. 1. 25.

1935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태어난 작가는  기존언어와 사유 체계의  전복을 시도하는 글쓰기를 시도 했으며 참여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대인의  소외와  상실을  절제되고 압축된 문장으로 환기 시킨 작품이 '책상은 책상이다'


어떤 나이 많은 남자 얘기를 하려고 한다.
그는 잿빛 모자를 쓰고  잿빛바지에 재빛재킷을 입고 다니는데, 겨울이면 긴 잿빛외투를 걸친다.
목은 가늘고  그 목의 피부는 바짝 마른데다  쭈글쭈글 해서,  흰 셔츠의 목둘레가 너무 헐렁해 보인다.

이 나이많은 남자는 아침에 한 번 , 오후에 한 번 산책을 하고, 이웃과 몇  마디 주고받고, 저녁이면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건 언제나 똑같았고 일요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 번은 특별한 날이 찾아 왔다.
다른 날과 달랐던 점은, 갑자기 이 모든 것이 남자의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이다
"달라져야 해, 달라져야 한다구!"


"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하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거지?"
"이제 달라질꺼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침대를 '리'라고 하고 책상을 '타블'
그림을 '타블로', 그리고 의자는 '쉐즈'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 알아듣는다. 그리고 중국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자기들끼리 말이 통한다.

"어째서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지 않느냔 말야".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달라질 거야." 이렇게 외치면서  그는 이제부터 침대를 '사진' 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피곤하군, 사진 속으로 들어가야겠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다가 의자를 '시계'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계 위에  앉아 양팔을 책상 위에 괴고 있었다
그러나 책상은  이제 더 이상 책상이 아니었다
그는 책상을 '양탄자'라고 불렀다.
남자는 이 일에 재미가 들어 온종일 연습해서 새 단어들을 암기했다.
이제 모든 것의 이름이 달라졌다

잿빛 외투를 입은 그 나이 많은 남자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더 이상 이해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건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그를 더 이상 이해할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했고
자기  자신하고한 이야기 했고
더 이상 인사조차도 하지 않게 되었다

언어는 사회성이 있다고 한다.
여러 사람과의  약속으로  어떤  물건은 "의자"가되고
어떤 것은 "행복"이 되기도 한다
이 나이 많은 남자는  문화처럼 여러 사회구성원과의 교류나 그렇게 하자고 한 규칙을 뽀죡한 개인의 것으로
마음대로 바꾸었다.
결국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할
말을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고,   스스로 침묵 하게 되었다
삶을 살아 내다 보면 이런 갈등에 처할 때가 종종 있다
따로 또 같이의 조화가 정말 중요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