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ㆍ사진:서찬석
얼마전 가보고 싶던 몽골여행을 갈수 있었다
힐링되는 초원평원을 보고, 칭기스칸박물관을 가 보았다.
12세기 전의 몽골영토부터 우리나라 고려까지 통치 했던 시대의 지도도 살펴보았다
어린시절 읽었던 칭기스칸 전기문에서 몽골의 자연환경이 궁금했고, 위인으로 쓰여진 칭기스칸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삼별초 항쟁" 책을 읽고 난 후에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본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삼별초 항쟁의 현장에서 역사의 함성을 듣는다.
1.강화도로 간 고려
2.온몸으로 몽골의 침략을 막다
3.팔만대장경에 기대어
4.삼별초, 대몽 항쟁을 선언하다.
5.진도에 들어선 고려의 새 정부
6.남해현에 마련한 교두보
7.제주도로 가다.
8.여원연합군과의 혈투
9.아아, 고려여!
10.최후의 결전
13세기 초 몽골족의 우두머리인 칭기스칸은 주변 부족과 나라들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까지 정벌하면서 순식간에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오직 한 나라, 고려에서만은 자신들의 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했다.
그 중심에 삼별초라는 특수 부대 조직이 있었다.
삼별초군은 고려정부가 개경으로 환도를 선언하자 즉시 반대를 외치면서 몽골에 항쟁을 선언했다.
삼별초 지도자들은 몽골에 항쟁을 선언하면서 자신들이 고려정통정부임을 선언하고. 위험한 강화도를 버리고 진도로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겨 다니며 치열하게 그들과 대결했다.
진도의 용장산성에서, 제주의 항파두리성에서 삼별초 군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침략자들과 당당히 맞섰다.
그러나 삼별초 군이 펼치고자 했던 웅지는 역부족이어서 여몽연합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제주도 한라산부근의 붉은오름에서 김통정장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끈질긴 3년여 간의 항쟁이 끝나고 만 것이다.
삼별초 항쟁을 두고 일부에서는 고려 조정에 반기를 든 난이라고 낮춰 보기도 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끈질긴 항쟁심을 느끼기 위해 부단히 답사하며 돌아 다녔다.
고려의 자주정신과 꿋꿋한 기상이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273년 4월28일 만 3년동안 삼별초의 항쟁은 끝나고 말았다.
삼별초 항쟁이 끝난 후, 고려는 원나라의 왜국 정벌에 동원되는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고려조정은 원나라에 충성을 맹세해야 했고, 그들의 풍속을 따라야 하는 등 치욕스런 80년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 굴욕의 긴 나날 속에서도 고려 백성들의 어둔 마음 한 구석에서는 늘 샛별처럼 삼별초가 빛나고 있었다.
요즘도 결혼식 폐백문화에 ,여자양볼의 빨간 원모양 연지, 곤지를 찍는다. 이것은 이때의 몽골 풍습이라고 한다.
80년의 통치가 남긴 통치문화의 생존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일제36년 외에도 더 긴 시간 인고의 시간을 살아낸 우리 역사에 감사하게 된다.